세계사에서 빛나는 업적 - 이승만의 『농지개혁』 당시 시대상황과 농지개혁의 효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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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만기념관 댓글 0건 조회 866회 작성일 18-10-23 16:04본문
3. 소작농들에게 자유 주기 위해 지지 세력인 한민당과 대적해
1948년 8월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30세에 도미하여 명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오랫동안 미국에 체류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승만은 1904년 도미 전 한성감옥소에 있을 때 저술한 ‘독립정신’이라는 책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젊은 시절부터 농민들과 노동자들에 대하여 상당히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소작농들을 지주들의 속박으로부터 풀어주어 자경 농민으로 만들고 국가 주력산업을 농업에서 공업으로 전환하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토지의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를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소작농들이 현혹되는 것도 막아야 했다. 소작농들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한 농지개혁은 한국전쟁 때 북한의 인민해방 전략을 무산시켜 한국의 공산화를 막았다.
▲ 이승만 대통령 충북 농촌 방문 환영 인파
이승만은 유상몰수와 유상분배의 자본주의 농지개혁을 구상했다. 그러나 농지개혁을 위해서 자기를 지지해준 지주세력의 한민당과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승만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들과 어렵게 협상을 거듭하여 1950년 3월에 농지개혁 법안을 공포하고 소작농들에게 농지분배예정 통지서를 발부했고 4월에 농민들은 자기 소유가 될 농지에서 파종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지주 중 일부는 이미 소작농들에게 농지를 강제로 매도해 돈을 챙겼고 극소수는 사립대학교 설립에 농지를 출연해 대학교 교주(校主)가 되어 농지개혁을 피했다. 농지개혁 후 1951년 순수 자작농의 비율이 아래 표와 같이 80% 이상으로 증가했으니 성공한 개혁이었다. 농민들은 자기 농지에서 도전정신을 갖고 창의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게 되었고 농촌사회도 민주화가 되어 갔다. 농지 소유상한을 2정보로 하는 최종 농지개혁 법안은 다음과 같다.
1) 몰수된 지주에 대한 보상은 연평균 생산량의 150%로 한다.
2) 지가증권 상환은 5년간 분할로 한다.
3) 농지를 부여받은 농민은 연평균 생산량의 150%를 5년간 분할 상환한다.
[출처] 프리미엄 조선 - 장대성의 세종 회장과 충무공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