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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대미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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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나라 수호를 위한 『이승만의 대미투쟁』 (1942-1960)


편지, 전보 등 원사료 중심으로 엮었다. 즉 건국을 이룩한 핵심 인물의 고백인 일기와 그와 가장 절친인 로버트 T. 올리버 박사와의 기탄없는 서신 등이 바탕이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책 입안자와 극한적인 대립투쟁을 벌여 온 이승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ROBERT T. OLIVER의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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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T. 올리버


저자 로버트 T. 올리버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바크넬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1942년 9월에 당시 에드워드 장킨 목사의 소개로 이미 67세나 된 노신사 이승만을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뛰어난 인품과 학식에 매료되어 그는 이승만의 개인비서를 자청하여 그 후 미국에서의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그리고 해방 후 건국 때까지는 한국에 와서 이승만과 미군정청 간의 소통을 돕는 자문관으로 활동했으며, 그 후 이승만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1960년까지 줄곧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고 대변하며 해외에서 한국을 홍보하였던 인물이다.
이 책은 1942년부터 1960년까지 그와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서신과 전보문,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왔던 일기, 그리고 당시 세계 주요 언론매체에 기고했던 글 등 역사적 원재료들을 시기 순으로 정리하고 배열하여 독자들을 해방 전인 1942년부터 해방, 건국, 6.25, 휴전협정, 4.19 등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고 있는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듯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 대하여 같은 저자의 같은 책을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란 제목으로 번역출판한 적이 있는 박일영 씨가 직접 추천사를 써주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본서는 가히 한국현대사의 정사(正史)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내용이 진실하고 충실하다.
그리고 특히 놀라운 것은 건국이나 국가의 방위와 주권의 유지를 위해 이승만은 부단히 미국 정책 입안자와 극한적인 대립투쟁을 벌여 왔다는 사실이다. 절대로 미국과 등져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정책에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는 한국의 입장을 가장 충실히 대변한 인물이 다름 아닌 이승만이었다. 만약 그대로 따라갔다면 자유주의적인 대한민국은 살아남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역자 서문에서-

대한민국의 적대국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국가들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우방국과 동맹국까지 포함한 세계열강들은 하나같이 이승만이 이루고자 했던 일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북한, 소련, 중공은 이 박사 정부에 적극적인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미국, 영국, 인도는 이승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계획과 핵심적인 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해 자제시키고 억제하거나 거부하였다. 이승만은 적과 동지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모든 수단과 방도를 다 동원하였다. -저자 서문에서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가진 반감을 비난하고 있으며, 소련 사람들과도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미국이 정직하게 한국 독립에 대한 공약을 지키지 않거나, 한국을 싸구려 상품처럼 다른 곳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면, 한국의 나아갈 타당한 길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의 한복판에서 말을 바꿔 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의지와는 크게 다르지만, 피치 못하게 소련의 지배하에 있는 다른 국가의 국민들처럼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제 5장에서 


각 신문들은 이 대통령과 그의 새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불길한 서울발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의 자유를“억압”하고 국민을“탄압”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실제로 미군정이 물러날 때 남한에는 공산당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최초의 미군 철수 직후에 남한은 각지에서 일어난 파업과 시위와 무장봉기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이러한 공산당의 봉기를 억누르기 위한 이 대통령의 노력은 세계 언론에서“반동주의”,“독재”그리고“테러”로 묘사되었다.
공공연한 공산주의 반란이 제주도와 여수, 순천 그리고 대구 등의 도시 국방경비대에서 터졌다. 이것은 미 군정청이 국방경비대의 대원을 뽑을 때“정치성향 심사”의 허용을 거부한 데서 비롯된 직접적인 결과였다. 미 군정청이 조직한 국방경비대로부터 전 부대원이 탈영한 약 2,000명의 공산당 무리가 남한 내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약 500명의 정부 관리들이 살해되었다.
11월 14일, 이 대통령은 남한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고 미국에 추가로 5만 명의 병력을 무장시켜 훈련시키기 위한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이 요청은 거절당하고 말았다. -제 9장에서



<출판사 서평>

편지 ㆍ 전보 등 원사료 중심으로 엮어진 한국 현대사의 결정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고 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 동포들은 노예 상태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며 유족하게 살게 된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지켜냄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도록 해준 위대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해방직후 1946년부터 북에선 이미 <인민위원회>란 이름의 공산정권을 수립, 토지개혁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1948년 1월, 유엔은 한반도 전체에서 총선거를 실시, 독립국가 건국을 결의했으나 이미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과 그 하수인 김일성이 유엔선거감시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함으로써 남한만의 선거로 남한 단독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 김구 등 감상적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결사반대했다. 당시 상황에서 <통일정부수립>이란 곧 소련지배화의 공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유와 공산주의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결합될 수 없으므로 공산주의와의 타협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반대와 압력, 몰이해를 무릅쓰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꿈과 학식, 그리고 신념과 고집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독재는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켜낸 위대한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주한미군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지도자, 건국의 영웅이었다.
이승만은 독재자도 아니었고 친미파도 아니었다. 그의 꿈은 국민 각자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나라의 독립과 자존, 자립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나라의 건설이었다. 그는 이러한 나라 건설을 방해하는 공산주의 세력과 단호하게 싸웠다. 그는 독재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이러한 목표를 위해 독재자라고 비난받는 것도 겁내지 않았다.
4 ㆍ 19 후 병원을 찾아가 다친 학생들에게 불의에 항거하는 그 용기를 칭찬해 주었고, 사저로 돌아간 후 담장너머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을 보며 자기 꿈이 성취되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목 차>

제1장 암담했던 워싱턴 시절(1942~46년)
제2장 1946년 여름: 서울
제3장 실망, 의견 불일치 그리고 대결(겨울, 1946~47년)
제4장 진통을 겪으며 정책이 전환되다-고통스런 정책 전환(1947년 가을)
제5장 워싱턴의 한국 로비(1946~50년)
제6장 유엔의 불투명한 명령(1947~48년 겨울)
제7장 오리무중에서 어둠을 헤치고 탄생한 하나의 정부(1948년 봄)
제8장 자유로우나 아직 자립이 안 되는 하나의 정부 창조(1948년 여름)
제9장 선동에서 행정으로(1948년 8~12월)
제10장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1949년 봄)
제11장 철의 장막이 불거져 나오다(1949년 7~12월)
제12장 하나의 건전한 사회를 무너뜨린 공산군 남침(1950년 6월)
제13장 38선 이남 ㆍ 대 혼란과 용기(1950년 여름)
제14장 압록강까지 그리고 다시 후퇴(1950년 가을)
제15장 실수의 대가(1951년)
제16장 금 간 아성(牙城) (1950~52년)
제17장 헌정의 위기(1951~52년)
제18장 껄끄러운 동맹 ㆍ 반공포로 석방(1952~53년)
제19장 판문점 휴전 타결(1953년 7월)
제20장 외교에는 흙탕물이 있다(1954년)
제21장 제3의 전쟁 ㆍ 폐허와의 싸움(1950~60년)
제22장 한 시대의 종언(195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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