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이야기
페이지 정보
조회 1,589회본문
그림과 사진으로 쉽게 알아보는 근현대사, 엄마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독립부터 건국까지 국민의 자유를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이야기를 만나보다.
<출판사 서평>
어느 날, 지인을 통해 연락이 왔다.
자신을 두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한 여성분은 자신이 정리한 원고가 있는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냐고 했다.
그 원고는 ‘이승만 대통령’ 일생을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거절할 수 없어 읽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서툴고 정리가 되지 않은 원고였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내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의 놀라운 시작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의 여정에 함께 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한 인물이 있다. 사람의 모습이 평면일 수 없듯이 이 인물의 삶 속에도 공과가 극명하게 나뉜다. 그러나 과가 있다고 해서 공까지 묻힐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원한다. 정확히 알 때, 우리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으리라.
<책 속으로>
이승만은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단다. 바로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 된 서양 국가에서는 개개인의 자유가 보호된다는 사실이었어. 또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자유주의와 ‘국민은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라는 민주주의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사상을 채택한다면,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백성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 32쪽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인 1918년 1월, ‘평화를 위한 14개 조항’을 발표했어. 이승만은 그 발표문 에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라는 주장이 포함된 것을 보고, 우리나라가 강력한 독립 의지를 보이면 국제 사회가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게 돼. 그래서 독립 운동가들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 대규모 집회를 열도록 건의하게 됐고, 이게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 운동의 시작이었지. - 76쪽
5·10 자유 총선거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중대한 의미가 있어. 전 세계 가운데, 한 나라를 세우면서 자유 총선거를 통해 초대 국회의원을 선출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거든. 또 만 21세 이상의 한국 국민이면 성별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투표권을 줬어. 단순히 투표권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자유와 권한을 주었으니 엄청난 개혁이었던 셈이야.
우리 역사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를 누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신분제라는 굴레 속에 살아야 했던 국민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 선거권을 부여한 대사건이 바로 1948년 5월 10일에 있었던 자유 총선거였단다. - 119쪽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국민의 재산권과 경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출발했어. 이 같은 건국의 방향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인의 생각이 다 같지는 않았지. 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인간의 물질적 복지를 늘리고, 정신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단다.
이것이 이승만의 가장 큰 공적이라 할 수 있어. 국제 정세를 보는 눈과 올바른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용기, 그리고 미국을 설득하여 독립을 쟁취하려는 전략적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몰라.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지. - 125쪽
이승만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농지개혁과 교육개혁을 시행했어. 국민에게 땅을 주고, 교육을 함으로써 일부 계층만 갖고 있던 특권을 전 국민에게 나눠주었지. 이것이 성공하면서 차별이 없어졌고, 양반이라는 단어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어. 옛날에 양반은 특권 계층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이 양반, 저 양반’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지. 글자 그대로 보통 사람이 모두 양반이 된 평등 국가, 대한민국이 되었단다. - 148쪽
북한의 남침으로 군사 한계선이 낙동강까지 밀렸을 때, 미국은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권유했어. 하지만 이승만은 절대 한반도를 떠날 수 없다며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끝까지 싸웠지. 그는 전쟁 내내 우리 영토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단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이 ‘거짓 방송으로 국민을 속이고, 혼자 살려고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갔다’거나 ‘일본으로 몰래 망명하려 했다’라고 주장하지. 무척 악의적인 거짓말이지만, 전쟁 초기 열악한 안보 속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미국과 강력한 군사 동맹까지 맺었던 이승만에게 국내외에 많은 적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된단다. -165쪽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휴전 협정을 맺고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이승만이 반공 포로 석방 건으로 판 자체를 깨버렸지. 이렇게 되면 휴전 협정이 어려워지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인기는 계속 떨어져 그의 정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미국의 약점을 정확하게 겨냥해서 대한민국이 필요한 것을 받아내려 했던 고단수 외교였지. 결국 이승만은 휴전 협정 체결 조 건으로 미국으로부터 3가지 약속을 받아냈단다.
첫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야. 한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국과 맺은 군사 동맹이지. 미군을 최전방에 배치하여 북한이 남침할 수 있는 24개 길목을 지키게 했어. 미국은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해외에 주둔한 미군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지. 북한과 남한의 전쟁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싸운다는 거야. - 179쪽
태평양전쟁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일본 어선 활동 구역’ 을 제한하는 ‘맥아더 라인’을 발표했어. 하지만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 무효화 될 예정이었고, 얼마 후면 동해는 일본 어민들의 텃밭이 될 판이었지.
그런데 이승만은 1952년 1월에 이미 미국과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도를 포함하는 해양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어버렸단다. 그리고 일본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에 한발 먼저 등대를 세우고 군부대를 주둔시켰어. - 221쪽
사람들은 이승만의 계획을 처음부터 다 이해하지는 못했어. 그래서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체제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사사오입 개헌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거야.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유시장 경제의 열매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열매를 맺게 한 장본인인 이승만의 부정적인 면만 보고 비난하고 있는 셈이지. - 231쪽
“오늘은 내가 이거 무슨 전쟁 중에 앉아 있는 거 같아. 사람들이 나를 나가라고 하는 모양인데 순순히 좋게 내주려고 해.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똑똑히 알았으면 해. 뭣인지 까닭을 알아야 해결할 것 아냐.”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호소하면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전국이 시위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던 4월 19일까지도 간신배들은 허위 보고를 하고 있었어. 많은 업적을 이룬 건국 대통령의 마지막을 얼룩지게 만들었지.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의 부정선거였고,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 이승만의 지시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것은 잘못한 일이야. - 235쪽
4월 26일 오전 9시, 송요찬 계엄 사령관이 대통령에게 “발포를 안 하면 수습이 안 됩니다”라고 했을 때 이승만은 “발포는 안 돼! 국민이 무엇을 원해?”라고 물었고, 이에 송요찬 사령관이 “하야하시랍니다”라고 하자 “그럼 하야하지”라고 했단다.
그러고는 “오늘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라며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 대답을 독촉했어. 김정렬 장관은 “각하, 저희가 보좌를 잘못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지.
이승만은 이것을 속히 사람들에게 알리자며, 하야 성명을 받아쓰게 했어.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도 물러나야 해. 그게 우리 민주주의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하야했단다.
퇴임 후, 각국 대표들로부터 위로 편지를 많이 받았어. 이승만은 “나를 위로하는 편지는 안 받겠소.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오. 부정을 보고 궐기하는 백성들이 나라를 지키니, 이런 날 을 평생 기다렸기 때문이오”라고 답장했지.
“부정을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 238쪽
나라를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국민들은 잘 알아야 하며,
경제에서나 국방에서나 굳건히 서서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유언이야.
반드시 자유를 지켜야 해. - 이승만의 유언 - 250쪽
<목 차>
들어가는 말
추천사
1. 청년 이승만
1) 배재학당에서 영어와 자유 민주주의를 배우다
2) 언론인과 연설가로서의 이승만
3) 인생을 바꾼 한성감옥
4) 기적 같은 출옥 그리고 미국 유학
5) 나라 되찾는 것이 우선임을 절실히 깨닫다
2. 독립운동가 이승만
1) 하와이에서의 활동
2) 3·1 운동과 임시정부
3)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4)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책, ‘재팬 인사이드 아웃’
5) 카이로 선언과 8·15 해방
3.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1) 공산국가가 될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건져내다
2) 5·10 자유 총선거와 헌법을 만든 제헌 국회
3) 대한민국 건국
4) 국가 보안법 그리고 친일파 논란
5)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시작, 농지개혁과 교육개혁
4.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이승만
1) 6·25 전쟁,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
2) 전쟁 초기 이승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
3)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 포로 석방
4)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한미상호방위조약
5) 대한민국을 도운 이승만의 친구들
5. 미래를 내다본 이승만
1) 한미동맹, 후세에 남긴 값진 선물
2) 미국인을 열광시킨 이승만
3) 자원 없는 전쟁 폐허에서 시작한 원자력 발전
4) 나무 없는 민둥산을 푸르른 산으로
5) 이승만 라인(평화선)으로 영해와 독도를 지켜내다
6. 자기 성공의 희생자 이승만
1) ‘사사오입 개헌’으로 탄생한 자유 시장경제 체제
2)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3) “국민이 원한다면 내려와야지”
4) 하와이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영원한 안식에 들다
부록
이승만의 영혼의 동반자, 프란체스카 도너 리
이승만에 대한 평가들
이념과 사상 개념정리이
승만 연보
참고자료 / 사진출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