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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체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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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3월 9일자 <협성회회보>는 우리 문학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승만의 시 '고목가(枯木歌)'가 실린 것이다.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이승만이 평생 남긴 시는 한시(漢詩)가 대부분이다. 고목가는 그가 남긴 유일한 한글 시다.

이 시로 말미암아 이승만은 또 한번 '최초'의 지위를 획득한다. 조선 말엽 개화기에 전통적인 시가의 형태와 다른 새로운 시들이 탄생했는데, 이를 신체시(新體詩)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는 최남선(崔南善)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최남선의 작품이 <해조신문>에 실린 때가 1908년이고, 이승만의 '고목가'는 1898년에 <협성회회보>에 수록되었다. 따라서 한국 최초의 근대시, 신체시의 명예는 이승만의 '고목가'로 돌려야 한다.

고목가의 율조와 형식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4년에 펴낸 <찬양가> 초판에 나오는 노래를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동양 소재와 서양 형식을 절충하여 지은 시라 할 수 있겠다.

'Song of an Old Tree'라는 영문 제목까지 달아 놓은 것도 흥미롭다.




          <고목가>


 

 슬프다 저 나무 다 늙었네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섰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몇백 년 큰 남기 오늘 위태


 원수의 땃짝새(딱따구리) 밑을 조네

 미욱한 저 새야 조지 마라

 조고 또 조다가 고목이 부러지면

 네 처자 네몸은 어디 의지依支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뿌리만 굳박혀 반근盤根되면

 새 가지 새 잎이 다시 영화榮華 봄 되면

 강근强根이 자란 뒤 풍우 불외不畏


 쏘아라, 저 포수 땃짝새를

 원수의 저 미물, 남글 쪼아

 비바람을 도와 위망危亡을 재촉하여

 넘어지게 하니 어찌할까?


 

1898년 <협성회회보>발표





나라의기운이 쇠하고 있는 대한제국을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고목에 비유하고 나라를 좀먹고 있는 친러파 관리들을 나무를 쪼아 먹는 땃짝새로 표현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영토적 야욕을 비바람에, 자신과 같은 투사들을 땃짝새를 쏘는 포수에 비유한 이 시는 이승만의 기개와 용기를 보여준 근대시로 당시 여러신문과 잡지에 유행하던 애국시의 시작이었다.


"...신체시의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승만의 <고목가>가 최초의 신체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시는 번역 찬송가를 모방하여 만든 시로서 정형시이지만, 이 정형성이 한국 전통시의 형식이 아니라 서구 4행시(short meter)를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근옥-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시문학사,2001), pp.361-418>


"1898년 '협성회회보'에 '고목가'가 발표된 것으로 미루어 1898년부터를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한국 시인 협회장 김종해, 2004년 10월 2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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