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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인은 자기나라 위대한 지도자를 모를까 [로버트 올리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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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올리버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교수, 구미위원부 정치고문

이승만은 독재자였나?

한국에는 이승만 박사를 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부패한 독재자라고 부르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나는 23년간 이 박사와 친교를 나누어 왔고 18년간 그의 미국내 고문 겸 대리인이었다. 이 박사를 비난하는 사람 중에는 나와 이 박사의 이러한 관계를 근거로 들어 내가 "이 박사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이다"고 비판하지만, 그러는 그들은 "이 박사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박사는 과연 독재자였는가. 

이 박사 재임시 한국 신문들의 지면에는 반정부적인 기사들로 가득차 있다. 비판자들은 이런 것을 근거로 이 박사는 재임시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지적하지만, 이는 이 박사가 언론자유를 폭넓게 허용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비판자들은 당시 AP 통신이 한국의 언론자유를 세계 네번째, 다섯번째 수준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판자 중에는 1952년 이 박사가 재선을 위해 강압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고 부정선거를 획책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투표율은 세계 최고였고 비밀투표의 원칙이 지켜졌다. 비판자들은 UN한국위원회가 "부정 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 결과가  일반인의 진정한 의사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보고한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비판자들이 이 박사를 독재자로 보는 또 하나의 증거는 국가보안법의 제정이다. 국가보안법은 용공세력이 침투하고 남북이 분단되는 안보 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가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어느 국가든 기본권을 제한한다.
미국 역시 진주만 피습 직후 태평양 연안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은 이승만 시절이 아니라 박정희 치하 때 만들어졌다는 점을 비판자들은 알아야 한다.

 

이 박사가 장기 집권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명예로운 은퇴를 권유받았을 때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은퇴하면 장면이나 조병옥이 대통령이 될 텐데 그들은 지도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었다.
이 박사의 이러한 판단은 정확했다고 본다. 설사 이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이는 이 박사 혼자만 저지른 유별난 실수가 아니다. 루스벨트, 처칠, 장개석, 모택동 등 세계 각국의 저명한 지도자들 역시 장기 집권을 획책했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이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박사의 애국심이다.
1898년 그는 독립협회 사람들과 연좌시위를 하다 체포돼 6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이 때 그가 당한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독립정신』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일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린다. 그러나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다고 해서 불을 끄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당신의 마음에 애국심이 없다면, 당신의 마음이 바로 당신의 적이다. 만약 당신의 마음 속에서 공동의 대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지 말라는 유혹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당신의 그 감정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한다.'

 

20대에서 옥중생활을 통해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때론 고집 세고 오만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하였고, 비판자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 지도할 수 없다. 이 박사가 주위 사람과 불화를 빚은 것은 이러한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이 박사에 대한 비난 중 하나는 그가 남한만의 단정을 획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 당시의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소련에 복종하는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했을 때만 남북 분단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이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어야 옳다는 말인가?

 

이 박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한국을 미국의 '부하'에서 '동맹자'로 끌어올린 한 점이다. 6.25 초기 북한군이 대전을 포위하자 무초 미 대사는 한국정부를 제주도로 옳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이 박사는 권총울 꺼내 들고 "한반도를 떠나기보다는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제주도로 정부를 옮기고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들을 대한해협에서 저지했으면 한반도 전쟁은 동유럽처럼 공산화되는 선에서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 박사는 이러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군의 훈련과 무장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고, 압록강까지의 진격을 촉구하였으며, 휴전을 한사코 반대했던 것이다.

 

학교 교육제도의 확립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이 박사의 업적이다. 그의 재임 중 국민확교에서부터 대학원까지의 수많은 학교가 생겨났고 여기에서 배출된 인력이 그후 급속한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북한에서의 교육이 '위대한 지도자'의 전기와 사상에 집중하는 동안, 대한민국 헌법은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 결과 한국 학생들이 열렬한 이 박사 추종자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비판자가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박사 재임 중 국회는 지주 출신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박사가 공사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장관에 임명해 농지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는 점은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승만은 위기와 가난의 심연에서 한국민을 끌어올린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이 박사에 대해 긍지를 느끼기보다는 악의적인 비난에 오히려 솔깃해 하고 있다.

왜 한국인은 한국이 키워낸 위대한 지도자를 모르는 것일까.





[출처] 뉴데일리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4/08/13/20140813000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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